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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기다립니다


아들로부터 물리적 공격을 받아 몸을 크게 다친 부부가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그런 일이 종종 있어왔기 때문에 이 부부는 늘 아들의 재판날이 언제일지 궁금해 합니다. 팬데믹 때문에 재판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부부에겐 어찌보면 다행입니다. 아들이 혹시라도 풀려나게 되면 다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재판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별다른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갖힌 이들이 많습니다. 이를 테면 약품을 소지한 친구 차에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해서 탔다가 함께 체포되는 경우입니다. 보석금은 그저 몇 백 불에 불과한데 그 돈을 낼 수가 없어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 중, 팬데믹 때문에 재판이 자꾸 연기됩니다.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재판날이 되기 전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데, 그것이 수 개월, 아니 수 년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성경 속에도 재판을 기다리던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 해결받아야 하는데 재판관이 사건을 받아주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 즉 사람들의 생명과 안녕에 대해 관심이 없는 재판관입니다. 뇌물을 받고 판결을 하는 재판관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뇌물로 줄 돈이 없는 이 여인의 사건은 아예 다뤄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재판관을 자주 찾아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자신의 재판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애걸하는 여인. 결국 재판관은 이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귀찮아서 그녀의 청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습니다.


이 이야기의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게 가르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녀의 그런 면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과연 그녀는 끈질긴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끈질김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녀의 관심은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끈질김이 값질 수 있는 것은 정의를 구하며, 그 정의를 실현해줄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도 이런 모습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는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끈질김의 목적은 정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 하나님의 공의가 구현되는 것,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그것이 우리가 갖는 끈질김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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