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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마리아와 마르다는 그들의 형제 나사로와 더불어 예수님과 친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어갈 때 이 자매들은 걸어서 한 시간이면 갈 거리에 계시던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간절한 소식을 전해 들은 후에도 이틀을 더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가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후에야 드디어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이 때 마르다는 나가 예수님을 맞이했지만 마리아는 나가지 않고 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라버니의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을 빨리 오시라 청했건만 즉시 오시지 않으셨던 것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먼저 만난 마르다는 외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님과의 짧막한 대화 후에 마르다는 가서 마리아를 부릅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 갑니다.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도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소리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같은 말을 외치는 자매들의 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합니다.

어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을 기념하는 종려 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땅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 곧 무슨 일이 그들의 스승에게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것이 들뜨고 즐거운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주님, 예루살렘에 오지 않으셨더라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겠나이다. 왜 굳이 여기에 오셔서 죽음을 당하셨습니까?”라고 외치지 않겠습니까? 마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겠나이다”라고 외치던 자매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께서 여기 오지 않으셨더라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셨겠나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말합니다. 자기들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늘 분명한 의도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나사로의 고난을 듣고도, 부활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지체하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도 그 고난의 길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시던 그 분을 향해 하나님께서 “예수 내 아들아, 죽음에서 일어나라” 외치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죽음의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의도를 갖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먹을 양식과 잠잘 곳이 있으니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나의 욕심을 성취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고 계십니까? 하루하루 바람부는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을 뭘 그리 아득바득 살아가나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이루고 가진 것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매진하고 계십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진 의도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의도를 갖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의도를 갖고 살아가십시오. 선한 의도, 복음의 의도, 생명의 의도를 갖고 살아가십시오. 그런 당신에게 오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우리 주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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