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하늘의 지혜를 부르는
링컨 대통령은 어릴 때 벌거벗고 다녔다고 합니다. 옷이 한 벌 밖에 없어서 교회갈 때만 입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는 그 가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주의원과 하원의원을 거쳐 미국의 대통령까지 된 분입니다. 그런 그가 미국 최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남북전쟁이라는 어려움을 대면하던 중 게티스버그에서 이렇게 연설합니다: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이 나라는 하나님 아래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표현 안에는, 나라의 힘이 국민에게서 나왔다는 과거 인식, 국민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현재 인식, 국민을 위해 돌아갈 것이라는 미래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구원 문제를 다룬 후 로마서 11장 말미에 붙인 이 송영 Doxology 에도 비슷한 문장 구조가 발견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 창조자면서 하나님은 만물의(과거)요, 주관자(현재)요, 섭리자(미래)이라는 것을 From him, through him, and to him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창조하셨고, 현재 주관하시며, 미래를 섭리하시리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더불어 이 송영에는 담겨 있는 가치들—지혜와 지식, 판단, 길, 모사—은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 찾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나에게 달라고 그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내가 갖고 내가 판단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니 판단해 주심을 노래합니다.
이런 경지의 찬양을 불렀던 사람들은 양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찬양을 지은 이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시편 23편을 쓴 다윗은 그가 왕이 되어 편안할 때에 이 유명한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 압살롬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닐 때에 이 시를 썼다고 말합니다. Amazing Grace를 지은 John Newton 목사님도, “내 구주 예수를”을 지은 Elizabeth Prentiss사모님도,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지은 Horatio Gates Spafford도 말할 수 없는 고통 뒤에 이 놀라운 찬양들을 지었습니다.
고난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에게 주신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고난이 나로 하여금 부르게 하는 찬양은 무엇입니까? ‘이 고난이 빨리 지나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고난 때문에 가능케 된 찬양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찬양의 시를 지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더 강한 고난이 더 깊은 찬양을 가능케 합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이건 이렇게 하면 해결될 것이니 그 방향으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모습, 물론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문제들에 사로잡혀 그 해결책을 미리 정해놓고는 그것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은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를 제한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 최선의 길과 판단을 제한합니다.
반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고난과 그 너머에 계시는 주님을 경험한 사람은 한결 더해진 깊음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이 하늘의 지혜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주일 오후 2시 유투브에서 호수교회를 검색하시면 함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