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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지식 지혜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정보: 사물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나 자료

지식: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

지혜: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저도 신문을 다섯 개 정도 헤드라인과 요약을 두번 정도 다 읽고 그 중 기사도 수십 개를 읽습니다. 저녁에는 책을 수십에서 수백 페이지 읽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보가 저를 학식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보 중에는 오늘은 가치 있지만 내일은 그렇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각종 금융 자산과 환율이 그렇고, 유명인들이 한 말들, 정치가들의 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이 혼자 걸어간다. 하지만 그 시대가 지나면 전부 사라지는 말들.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정보가 지식(erudition)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를 모아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논리 있게 표현할 줄 알게 되면 학자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학자가 꼭 지혜롭습니까? 마치 그렇다고 증명하듯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는 순간을 위한 것이지만, 방정식은 영원을 위한 것이다" (Politics is for the present, but an equation is for eternity).

하지만 학자의 지식은 그 근본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미는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정정되었고, 중력을 단순히 당기는 힘으로 보았던 뉴튼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정정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인슈타인이 틀렸다고, 그의 방정식에 오류가 있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지식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 위험한 기계를 만들어 사람들이 다치게 된 일이 많습니다. 약을 처방받아 먹고 오히려 아프게 된 일도 과거엔 많았습니다.

정보를 좇는 사람, 지식에만 의존하는 사람, 그들이 갖는 한계는 영원을 보지 못하는 성급함에 있습니다. 그들의 자아는 창조주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근본, 창조주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주일 오후 2시, 유투브에서 호수교회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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