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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늘 실천해야 할 이것


동서양을 불문하고 귀신 (ghost)들은 종종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풀지 못한 한이 남아 있어 갈 곳으로가지 못하는 존재…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도 억울하여 깊은 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고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의를 구하는 노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원한으로 스스로를 얽어매는 사람은 스스로의 자유를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반면 용서는 얽매인 영혼, 묶인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해법입니다. 용서가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내게 끼쳐질 해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불쾌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 사람 피하지요? 용서함이 없이 피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 사람에 대한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도 다가가지 않으니 활동 공간도 조금일지언정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과 증오가 다른 사람들에게 확대되기도 합니다. 나쁜 중국 사람을 만났던 경험 때문에 중국 사람 전체를 싫어하거나, 나쁜 여자 친구를 만났던 경험 때문에 여자를 다 싫어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유가 사라졌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 활동의 폭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나는 그 한 사람 뿐만 아니라그를 연상시키는 모든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자유는 그만큼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불쾌한 일이 있기 마련—이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불쾌한 일들이 분명히 생깁니다. 이익관계가아니기 때문에 함께 해야할 강제력이 없고, 정기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불쾌함이 반복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럼 그 사람 피하면서 속내 앓으며 인내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뉘우쳐서요? 그 사람이 행동을 고쳐서요? 그 사람이 사과해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는 조건이 없습니다.

몇 번이나 합니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490번. 완전수 곱하기 완전수 곱하기 10이니, 완전함을 서로 곱하고 그것을 열 배로 늘린 정도까지 용서하라는 가르침—즉 습관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구하지 않아도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습관적으로, 무조적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

나를 용서하신 그 분을 생각하면서

조건 없이, 습관적으로 용서합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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