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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는 곤고한 사람


역사적으로 노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노예는 잉여 노동력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근대 미국의 노예는 유동 자산(chattel)의 의미였습니다.

노동력이라 인식되면 인권이 생기고, 사고 파는 것이 제한됩니다.

자산이라 생각하면 학대해도, 죽여도, 사고 팔아도 상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노예 주인들은 늘 노예들을 비인간화하는 일을서슴치 않았습니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아야 학대하고 사고 팔아도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노예의 개념은 가정을 돕는 추가적 노동력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6년 주인을 섬기면 7년 째에는 자유를 되찾게 해주는 희년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예 중에는 자기 주인이 좋아서 7년 희년이 되어도 자기가 주인과 함께 남아 계속해서 노예로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러면 주인은 그를 데리고 문지방으로 가서 그 귀를 뚫어 영원히 노예됨을 표시했습니다.

죄가 갖는 구속력이 얼마나 큰 지를 경험했던 사도 바울은 인간의 삶이 바로 죄의 노예와 다름 없음을 직시했던 사람입니다. 그강력한 힘 아래 치열하게 살던 그는 마침내,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외치며 죄의 억압으로 인한 인간 삶의 고단함을 인정했던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죄의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자유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경험해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노예로 살겠다고 선언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말할 때의 노예의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의 노예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노예요,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면 죄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귀를 문지방에 대고 구멍을 뚫는 자발적 노예,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기로 자처했습니다.

죄의 노예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노예요,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면 우린 죄의 노예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완전히 지쳐버린 수많은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기로 다짐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꿔 갑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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